모음곡 제목 :
주제 : 인간 생의 단계별 모순
곡별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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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해
- 키워드 : 해, 유아기, 탄생, Innocent, 산만한, 불규칙, 비정형, 상승
- 소리구성 : 마림바(딜레이 이펙트), 기화 되는 소리, 타오르는 소리
- 노트 : 태양은 과학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생명의 시작이라고 여겨진다고 생각합니다. 그 태양의 시작을 그려본다는 생각으로 곡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태양을 하나의 생명체 처럼 여겨보면서 아주 작은 사이즈의 태양을 생각해 보았고, 그런 작은 사이즈의 태양이 아주 작은 발화량을 유지하면서 물속에 담겨있는 이미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물 위로 떠올라 약간의 어리둥절한, 장난스러운 움직임을 보인뒤 몸이 다 마르고 몸집이 커지며 하늘위로 떠오르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해” 라는 단어는 태양 말고도 “해를 입히다” 할 때의 Harm 이라는 뜻도 있는데, 아이가 아무생각없이 물건을 부수고 입에 넣어 보는 행동들을 보면 분명 악행에 가깝지만 그 의도성과 피해범위가 아주 작기 때문에 그것을 문제삼지 않게 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곡에서의 주체 역시 변덕스럽고 다소 파괴적인 존재지만 그것이 불쾌하지 않고 오히려 응원받아 마땅한 분위기로 조성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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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뱀
- 키워드 : 성장, 청소년기, 성취, 가속, 몰입, 리드미컬, 폭력성, 파괴
- 소리구성 : 드럼(봉고,미들탐,심벌 위주), 신스베이스, 큰 물체가 지나면서 무언가를 부수는 소리, 긴급뉴스보도, 헬리콥터
- 사과를 먹으면 꼬리가 길어지는 오래된 게임이 있습니다. 이 게임은 이미 선악과와 뱀의 이야기를 은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은 일반적인 게임에서 필수적으로 등장해야하는 악당이나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고, 먹으면 꼬리가 길어지는 사과(보상) 만이 존재하는데요. 게임의 플레이어는 사과를 먹으면 길어지는 몸통에 흡족해하며(성장) 머리를 이리저리 비틀어 사과를 먹는데 집중하게되고 어느 순간 자신의 꼬리에 부딪혀 게임오버가 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 짧뚱해서 귀여웠던 뱀은 사과를 먹어가면서 점차 징그러울 만치 길어지고 머리를 한참이나 뒤늦게 따라오는 본인의 몸때문에 점점 더 바쁘게 방향전환을 해야합니다. 이 곡의 주체 또한 처음에는 하찮고 귀여운 느낌이지만 점차 성취에 도취되어 점차 큰 해악을 끼치는 존재로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느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꼬리에 부딪히기 전까지 주체는 그 속도감과 성장감에 심취해 있기 때문에 끝까지 유희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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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춤
- 키워드 : 멈춤, 청년, 외부와의 단절, 성찰, 관찰, 떨림, 갈등, 상충, 무력, 자포자기
- 소리구성 : 비브라폰, 전자드럼, 베이스신스, 햄릿의 대사, 망치질 하는 소리, 칼이 부딪히는소리, 휘두르는소리, 사람들의 웅성거림
-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썬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이야기 속에서 검은 결단과 결정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모음곡의 모든 주체가 같을 필요는 없지만, 어찌되었건 두 곡의 단계를 지나 모순을 깨달은 시점에 대한 곡입니다. 제가 떠올린 이미지들은 무대와 연극배우(햄릿), 칼이 만들어지는 과정, 외부와 단절되는 느낌, 부딪히고 떨리는 쇠(칼), 허공에 부질없이 휘둘러지는 칼 등 입니다. 모음곡의 세번째 곡은 주제상으로도 흐름상으로도 네번째 곡의 도약에 앞서 약간의 멈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며 한곡의 시작과 끝이 크게 차이나지 않고 비슷한 에너지로 곡이 나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커지고 작아지는 느낌 대신에 흩어지고 모이는 느낌을 떠올리며 작업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칼을 손에 들고 혼잣말을 하며 휘두르는 이미지를 상상했기 때문에 처음엔 “칼춤” 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가, 사람이 칼을 휘두루며 춤을 추는 느낌보다는 반대로 칼에 이끌려 꼭두각시 처럼 춤을 추고 있다는 설명이 적합한 것 같아서 “칼의 춤”으로 바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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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로 진동하는
- 키워드 : 계몽, 비극, 각성, 장년, 희생, 용기, 결심, 히어로, 클라이막스
- 소리 구성 : 드럼, 피아노의 이펙팅, 브라스계열의 신스, 일렉기타
- 무언가 쿵- 하고 내려 앉는 느낌이 들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울림이 나의 생각과 행동들을 완전히 바꾸어 버릴 때가 있습니다. 네번째 곡 “아래로 진동하는” 이란 곡은 그런 각성에 순간을 떠올리며 만들었습니다. 이전곡에서는 생각이 많지만 결정은 내리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번곡은 수많은 생각과 고민이 소강된 상태에서 시작됩니다. 타의에 의해 이끌리듯 무감하게 시작하지만 작은 울림이 점차 커짐에 따라 어떤 감정들이 피어나고 행동이 변화하는 과정을 그려 보고 싶었습니다. 이 곡은 총 4개의 스테이지로 이루어져 있는데, 1. 울림을 처음 감지하게 되는 단계 2. 비극을 확인하고 인정하는 단계 3. 운명을 받아들이고 나아가는 단계 4. 자신의 행동에 확신을 얻는 단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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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의 돌
- 키워드 : 사후, 비생물, 수수께끼 같은, 영속적인, 지속되는, 이어지는, 흘러가는
- 소리 구성 : 마림바, 돌이 흐르는소리, 전자오르간, 화이트노이즈, 물흐르는 소리, 비와 천둥소리, 목소리
- 무생물의 입장에서 보면 시간은 영속적입니다. 돌은 멈춰있는 것 같지만 영속적인 시간 속에선 갈라지고 합쳐지고 굴러가며 활발하게 변화할 것입니다. 이번 곡의 주체는 “돌”이라고 뭉뚱그려 이야기한 비생물로서, 영속적인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몇 백 년 동안 빠르게 변화하는 강산을 지켜보는 이미지, 그러고나서 데굴데굴 굴러간 다음 물에 잠겨 몇 백 년을 보내는 이미지, 이런 것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주체의 입장으로 본다면 시간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좀처럼 감정이 극적일 필요가 없습니다(애초에 감정은 없겠지만). 다만 빠르게 태어나 자라고 울고 뛰는 동물체들, 나고 자라고 열매를 맺고 썩히는 식물체들을 지켜본다면 좀 신기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돌이 그런 감정을 느낀 다기보다는 우리가(인간이) 그런 생물체와 대조되는 돌의 일대기를 한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듯 지켜볼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때 그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런 이미지를 생각하면 ‘우리는 왜 고통 속에 나고 자라는 것인가, 의미라는 것은 과연 있는 것일까?’ 하지만 동시에 그마저도 의미 있는 질문이 아닐 것 같은 기분을 어렴풋이 느낍니다. 4번 곡에 다다른 주체가 마지막에 죽음을 맞이했다고 생각하면 5번 곡의 주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4번 곡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는 또 다른 비생물이라고 본다면 더 재밌겠다고도 생각합니다.